1. 더운 여름, 왜 우리는 단 걸 찾을까?
한여름에 더위를 피해 편의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건 차갑게 얼린 아이스크림이나 시원한 탄산음료일 때가 많습니다. 단순히 기분 탓일까요? 아닙니다. 최근 기후 변화 연구는 우리가 더위를 느낄 때 단 음식을 찾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여름처럼 폭염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당 섭취량의 증가는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 차원의 도전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분 과다 섭취는 비만과 당뇨,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기후 변화와 맞물린 이 현상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2. 숫자로 본 놀라운 변화
연구진은 미국에서 2004~2019년까지의 건강·식습관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 기온이 평균 1도 오를 때마다 하루 설탕 섭취량은 약 0.7g 증가
- 지금 추세가 이어진다면, 2100년에는 하루 약 3g 추가 섭취 예상
겉으로 보면 “3g쯤이야” 싶을 수 있지만, 이를 연 단위, 평생 단위로 환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하루 3g이면 1년에 1kg이 넘는 설탕이 더 소비된다는 뜻이고, 이것이 수천만 명의 인구에 적용되면 국가적 차원의 건강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 증가는 단순히 기후 요인뿐 아니라 소득 수준과 생활환경에 따라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저소득층 가정일수록 가공음료·저가 디저트에 의존하기 쉬워,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 격차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3. 더위와 단맛, 그 숨은 연결고리
사람은 왜 더우면 단 것을 찾게 될까요?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원인을 제시합니다.
- 갈증 해소 욕구
고온 환경은 탈수를 유발합니다. 이때 시원하고 단 음료는 갈증을 빠르게 해소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선택될 확률이 높습니다. - 뇌 보상 회로 활성화
설탕을 섭취하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더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단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즉각적으로 좋아지기 때문에 반복 섭취가 강화됩니다. - 경제적·사회적 요인
저소득층일수록 값싸고 접근성이 좋은 설탕 기반 식품을 택하게 됩니다. 연구에서도 소득이 낮을수록 기온 상승에 따른 당 섭취 증가폭이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즉, 단순히 더워서 “아이스크림이 당긴다”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구조와 뇌 과학이 얽힌 문제인 셈입니다.
4. 달콤함의 대가, 건강에 남긴 흔적
설탕은 단기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여러 만성질환의 위험 요인이 됩니다.
- 당뇨병 2형: 반복적인 고혈당은 인슐린 저항성을 키워 결국 당뇨병 발병 확률을 높입니다.
- 비만과 대사증후군: 잦은 당 섭취는 복부 지방 축적을 촉진하고 고혈압·고지혈증 같은 대사 질환으로 이어집니다.
- 심혈관 질환: 고당 식습관은 동맥경화, 뇌졸중 위험을 증가시킵니다.
- 구강 건강 악화: 충치·치주질환은 당분 섭취와 직결됩니다.
- 염증성 질환 및 암: 최근에는 고당 식단이 만성 염증과 특정 암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WHO는 하루 50g 이하, 미국심장협회는 남성 36g, 여성 26g 이하를 권장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500ml 탄산음료 한 병만 마셔도 50g 가까운 당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즉, 폭염이 심해지는 여름에는 무심코 기준치를 초과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5. 한국 여름과 당 소비 패턴
이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여름철 당 섭취가 크게 증가한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한국의 연평균 폭염 일수는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 편의점 업계 통계에서는 7~8월 아이스크림·탄산음료 매출이 연간 최고치를 기록합니다.
- 특히 청소년과 20대 소비층에서 여름철 음료·간식 지출이 두드러진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즉, 한국도 기후 변화와 당 소비의 연결고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6. 해외 정책 사례와 시사점
일부 국가는 이미 정책적으로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 멕시코: 세계 최초로 ‘설탕세’를 도입해 가당 음료 가격을 인상, 소비 감소 효과 확인.
- 영국: 아동 대상 설탕 음료 광고 제한, 학교 급식에서 고당 식품 퇴출.
- 유럽연합: 제품 라벨링 강화, 소비자가 쉽게 당 함량을 확인하도록 제도 개선.
한국 역시 이런 정책적 접근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폭염이 일상화되는 시점에서 기후 변화 대응과 건강 정책을 결합해야 합니다.
7. 생활 속 실천 팁
정책과 교육만큼 중요한 건 개인의 작은 습관입니다.
- 탄산 대신 무가당 탄산수로 대체하기
- 아이스크림 대신 얼린 과일 즐기기
- 시원한 물 자주 마시기 →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소
- 음료 라벨 확인 습관 → 1회 제공량이 아닌 실제 섭취량 기준으로 계산
작은 변화지만, 여름철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8. 더 뜨거워질 지구, 달콤한 유혹은 계속된다
지구 온난화는 앞으로 더 심해질 전망입니다. 폭염이 일상화되면 우리 사회는 더욱 쉽게 단 음식을 찾게 될 것이고, 이는 비만·당뇨병·심혈관 질환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카디프 대학교 판허 교수는 “기후 변화에 적응하려면 환경 정책뿐 아니라 식습관 개선을 포함한 공중보건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정책·교육·개인 실천이 함께 움직일 때 가능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