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색깔 하나로 다시 불붙은 논쟁
갤럭시 S26 울트라의 색상 루머 하나가 기술 커뮤니티를 달궜다. 최근 해외 IT 포럼과 레딧(Reddit)에 등장한 사진 몇 장 —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 은묵 중에 불씨가 된 것이다. 해당 이미지 속 S26 울트라는 ‘코스믹 오렌지(Cosmic Orange)’로 불리는 새로운 색상을 입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색상은 애플이 최근 아이폰 17 프로 맥스에 채택한 ‘우주 오렌지’와 거의 흡사했다.
삼성이 또다시 ‘아이폰 색상’을 따라 했다는 논란은, 과거 수차례 반복돼온 삼성의 모방 논쟁을 다시 불러왔다.
1. "색상 따라 하기" 논란, 단순한 우연일까?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단순히 ‘비슷한 색상’ 문제를 넘어선다. 삼성이 아이폰의 디자인 언어를 지속적으로 참고하고 있는가라는 오래된 의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1년, 애플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아이폰의 디자인과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베꼈다”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쟁점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감성적 요소’였다. 아이콘 배열, 둥근 모서리, 심지어 패키징 방식까지 — 결국 미국 법원은 애플의 손을 들어주었고, 삼성은 총 5억 3,900만 달러(약 6,00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특허 분쟁을 넘어, 삼성과 애플의 산업 철학 차이를 드러냈다.
- 애플: 완벽히 새로운 생태계와 사용자 경험 창조
- 삼성: 시장 반응을 분석해 빠르게 ‘대중화된 혁신’을 제공
2. "비웃다가 결국 따라 하는" 전통
이 패턴은 지금까지 여러 번 되풀이되었다.
- 2016년, 애플이 아이폰7에서 3.5mm 이어폰 단자를 제거하자, 삼성은 “우린 여전히 이어폰 잭을 유지한다”며 조롱 광고를 냈다. 그러나 3년 뒤 갤럭시 노트10에서 이어폰 단자를 없앴다.
- 2020년, 애플이 아이폰12에 충전기를 동봉하지 않자, 삼성은 “우리 제품엔 충전기가 포함된다”며 SNS에서 비꼬았다. 하지만 갤럭시 S21부터 충전기 미포함 정책을 시행했다.
즉, 삼성은 애플을 비판하다가도 결국 따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무비판적인 모방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삼성의 전략은 매우 계산된 타이밍을 따른다.
3. ‘선도자’ 대신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
삼성은 스스로를 ‘혁신의 주도자’라 말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서의 위치가 더 정확하다.
이 전략의 장점은 명확하다.
- 선도자의 실수를 피할 수 있다.
- 검증된 시장에서 비용 대비 효율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
- 애플이 일으킨 트렌드를 활용해 ‘대중적 프리미엄’을 구축할 수 있다.
예컨대, 아이폰이 시장을 열면 삼성은 곧바로 더 큰 화면, 더 많은 기능, 더 저렴한 가격으로 대응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아이폰보다 실용적인 선택지”로 갤럭시를 인식하게 된다.
4. 그러나, “빠른 추격자”도 한계가 온다
문제는 이 전략이 더 이상 독점적인 무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샤오미(Xiaomi), 화웨이(Huawei), 오포(Oppo) 등도 ‘학습형 혁신’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삼성의 중저가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넘어, 프리미엄 라인업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삼성이 과거 아이폰을 ‘따라 하며 성장’했다면, 이제는 삼성 자신이 모방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5. “색깔 하나”의 의미: 상징적이지만 치명적
‘코스믹 오렌지’ 논란은 단순히 색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소비자는 이미 “삼성은 아이폰을 베낀다”는 인식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다. 따라서 색상이나 카메라 배열처럼 미세한 요소조차 그 이미지를 강화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논란은 삼성이 여전히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애플의 ‘우주 오렌지’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면, 삼성은 이를 즉시 감지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색감을 포착한 셈이다.
즉, ‘모방’이 아닌 ‘시장 반응에 대한 대응’이라는 논리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6. “모방의 미학”: 성공으로 증명된 전략
삼성의 모방은 단순한 복제(copy)가 아닌, 응용(application)의 영역에 가깝다.
- 아이폰의 형태를 참고했지만 갤럭시 노트 시리즈로 ‘펜 입력’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 애플이 ‘프라이버시’를 내세웠다면, 삼성은 ‘개방성과 호환성’으로 차별화했다.
- 아이폰이 카메라 품질로 승부할 때, 삼성은 ‘줌’과 ‘야간 촬영’ 기술로 격차를 좁혔다.
삼성은 항상 한 발 늦게 출발했지만, 결승선은 늘 비슷한 시점에 도달한다. 그것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7. “이제는 따라 하기보다, 앞서야 할 때”
다만 최근 시장의 신호는 분명하다. 단순한 추격으로는 생존이 어렵다.
애플이 인공지능을 제품 생태계 전반에 녹여내고, 중국 제조사들이 자국 시장을 무기로 기술 독립을 강화하는 지금 — 삼성이 다시금 ‘혁신 기업’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갤럭시 Z 플립, 폴드 시리즈에서 보였던 창의성은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만약 S26 울트라가 정말로 ‘코스믹 오렌지’를 채택한다면, 색상 논란이 아니라 ‘AI 기반 사용자 경험’, ‘차세대 이미지 처리’, ‘친환경 소재 기술’로 평가받는 제품이 되어야 한다.
결론: “따라 하는 삼성”이 아닌, “길을 여는 삼성”으로
삼성의 지난 20년은 ‘모방’의 역사이자 ‘진화’의 역사였다.
그러나 기술의 패러다임이 AI 중심 시대로 전환되는 지금, ‘빠른 추격자’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능 경쟁이 아니라 철학의 혁신, 즉 “삼성만의 이유”다.
‘색상 논란’이 아니라 ‘삼성답다’는 평가가 나올 그날을, 시장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