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남부의 사말섬과 다바오시를 연결하는 4km 규모의 대형 해상교량 건설 프로젝트가 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관광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되는 국가 기반 시설 프로젝트이지만, 중국 자금으로 건설되는 데다 인근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법적 쟁점으로 비화된 것입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건설 논쟁이 아닙니다. 환경 보존과 경제 개발, 국가 주권과 외국 자본의 영향력, 그리고 법적 절차와 시민 참여라는 여러 층위가 맞물린 복잡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 논란의 중심, 사말-다바오 연결 다리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총 235억 필리핀 페소 규모로, 사말섬과 다바오시를 4차선 해상 다리로 연결하는 공공사업부(DPWH)의 핵심 계획 중 하나입니다. 다리가 완공되면 현재 30분 이상 걸리는 선박 이동 시간이 단 5분으로 단축되어, 물류 이동은 물론 관광객 유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2. 환경 단체의 반발: ‘영구적 피해 우려’
하지만 이 다리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해양 보호구역인 Paradise Reef와 Hizon Marine Protected Area를 침범할 우려가 있습니다. 해당 지역은 산호초와 해양 생물 다양성이 매우 높은 곳으로, 전문가들은 다리의 기초 구조물 시공과 해양 진입로 구축 과정에서 영구적인 생태계 파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환경 단체들과 지역 주민들은 필리핀 대법원에 ‘writ of kalikasan(자연에 대한 법적 보호 조치)’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정부에 10일 이내로 해명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3. writ of kalikasan이란?
‘writ of kalikasan’은 필리핀 헌법상 독특한 환경 보호 장치입니다. 두 개 이상의 도시 또는 지역에 심각하고 되돌릴 수 없는 환경 피해가 예상될 경우, 시민들이 법원에 보호 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이번 사건은 이 writ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전망입니다.
구분 | 내용 |
명칭 | writ of kalikasan (자연에 대한 권리 보장 명령) |
적용 대상 | 두 지역 이상에 걸쳐 환경 피해가 예상되는 사안 |
청구자격 | 시민 개인, 시민단체, 지역사회 등 누구나 가능 |
효과 | 정부 및 관련 기관에 환경 피해에 대한 해명 책임 부과 |
4. 응답자와 법적 대응
대법원은 공공사업부(DPWH), 환경부(DENR), 사말섬 보호위원회, 중국 도로 및 다리 건설사 등 총 4개 주체에 응답을 요구하였습니다. 만약 이들 기관이 기한 내에 신뢰할 수 있는 해명을 제출하지 못하거나, 환경 피해 가능성이 뚜렷하게 드러날 경우, 임시 환경 보호 명령이 내려져 프로젝트가 중단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5. 중국 자본에 대한 의구심
이 다리 프로젝트는 중국 정부의 차관 지원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건설은 중국 국영 건설사가 담당합니다. 이 점 역시 논란의 중심입니다. 필리핀 내부에서는 중국의 ‘채무함정 외교’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이미 과거 스리랑카의 함반토타항 사례처럼 외국 자본에 기반한 인프라 프로젝트가 국가 주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험적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필리핀 시민사회와 언론은 이 다리의 자금 조달 구조와 계약 내용의 투명성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6. 공공사업부의 입장: “경제 성장의 견인차”
이에 대해 공공사업부는 “이 다리는 단순한 기반시설이 아니라 지역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전환점”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DPWH 측은 관광산업, 투자 유치, 고용 창출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고 있으며,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체 설계와 시공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7. 전자 소송의 도입, 시스템의 진화
이번 writ of kalikasan 신청은 필리핀 대법원이 전자 소송을 허용한 첫 사례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e-filing’을 통해 writ of amparo, habeas corpus, kalikasan 등 공공 권리 보호에 관한 청원을 온라인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였고, 이는 필리핀 사법체계의 접근성과 투명성을 개선하는 계기로 평가됩니다.
8. 결론: 개발과 생태,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
사말-다바오 다리 건설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교량 공사를 넘어서, 개발 논리와 환경 보존, 주권과 자본 의존, 법치와 정책 실행 간 균형을 되묻게 합니다.
필리핀 사회가 선택해야 할 길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속 가능한 개발과 지역 주민의 생존권, 생태계 보전 사이에서 섣부른 판단은 되돌릴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