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항일전쟁 80주년 전승절 열병식은 국제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단순한 기념행사라기보다, 중국의 군사력·외교력·역사관을 동시에 보여주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참석하면서, 이번 행사는 중국이 구축하고 있는 새로운 국제 연대의 실체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해석됐다.
이날 행사에는 이란, 미얀마, 몽골, 중앙아시아 지도자들까지 참석했다. 서방 국가들의 불참 속에, 중국은 사실상 비(非) 서방 블록의 중심국가임을 강조하려 했다.
1. 푸틴과 김정은의 참석 배경
푸틴 대통령은 열병식 전날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관계를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 제재에 직면해 있지만, 중국과의 경제·외교적 연대를 통해 숨통을 틀 수 있었다. 이번 방문은 그 결속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기회였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의미 있는 행보를 보였다. 북한은 이미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번 베이징 방문은 이러한 협력이 단순한 비공식 수준을 넘어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시 말해, 푸틴과 김정은의 참석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 질서를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2. 중국의 군사력 과시
열병식의 핵심은 중국의 첨단 무기 공개였다. 스텔스 전투기 J-20 편대가 등장해 자국산 엔진을 탑재했음을 보여줬다. 이는 단순한 전투기 과시가 아니라, 군사 기술 자립화를 달성하고 있음을 알린 장면이었다.
또한 극초음속 드론, 대형 수중 드론 등은 대만해협 및 남중국해에서의 잠재적 작전 능력을 암시했다. 비록 해군 장비를 직접 전시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러한 무기 공개는 해상 봉쇄 능력과 장거리 타격 능력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더 이상 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 군사력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3. 역사관의 재구성
중국은 이번 전승절을 “항일전쟁 승리”로 규정하며, 미국과 유럽의 기여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은 과거 기고문에서 중국과 소련이 각각 아시아와 유럽에서 전쟁을 주도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과도 연결된다. 항일전쟁 승리는 당이 자신들의 집권 근거로 내세우는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난징 대학살 관련 영화나 영국 포로 구조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제작·홍보되고 있다. 중국은 문화적 내러티브를 통해 “우리야말로 피해자이자 승리자”라는 역사관을 국민에게 심어주려 한다.
4. 미국과의 비교, 대만에 대한 메시지
이번 열병식은 두 달 전 미국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와 비교되었다. 미국 행사에 비해 규모와 무기 전시 면에서 중국이 훨씬 앞선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중국은 자신감을 과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대만을 향했다. 중국은 첨단 무기 전시를 통해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경고를 던졌다. 대만 내부에서는 독자적 방위 역량 강화와 국제 연대 필요성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이번 열병식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향후 동아시아 안보 지형과 직결되는 신호였다.
5. 경제·외교적 파급 효과
열병식 직후 러시아와 중국은 가스 수출 증대 합의를 발표했다. 서방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에게 중국은 중요한 시장이며, 중국에게 러시아는 안정적인 자원 공급원이 된다.
또한 인도 모디 총리의 참석은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조치로 압박받는 인도는 중국과의 관계를 일정 부분 복원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는 서방의 대중 견제 전략이 반드시 일방적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6. 동아시아 국가들에 주는 시사점
이번 열병식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중국은 과거 역사를 자의적으로 재해석하고, 군사·경제적 자립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설계하려 한다. 만약 스스로의 기술력과 안보 능력을 강화하지 못한다면, 국제 사회에서 주체적 위치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아니라, 더 넓은 국제 질서 속 대결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 역시 기술·군사·경제 역량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전략적 사고를 통해 국가적 이익을 지켜야 한다.
결론
2025년 중국 전승절 열병식은 단순한 군사 퍼레이드가 아니었다. 푸틴과 김정은의 참석은 새로운 국제 연대의 모습을 보여줬고, 첨단 무기 전시는 중국의 군사적 자립과 전략적 의도를 드러냈다. 또한 역사 서사를 중국식으로 재구성하는 흐름은, 국제 사회가 역사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변화를 시사했다.
특히 대만을 겨냥한 메시지와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발표는, 이번 행사가 중국의 외교·군사·경제 전략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음을 분명히 했다. 앞으로 동아시아 정세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상징적 행사의 의미를 면밀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