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해협에서 중국과 미국 간 긴장이 고조될수록 한국 역시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미국 싱크탱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2023년에 발표한 보고서 "다음 전쟁의 첫 번째 전투(The First Battle of the Next War)"는 2026년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한 24개 시나리오를 분석했습니다. 그중 ‘비관적 시나리오(Pessimistic Scenario)’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미국의 대응이 지연되고, 일본이 소극적으로 움직이며, 대만 내부 저항이 분열된 상황을 가정했을 때 미국은 수백 대의 항공기 손실, 다수의 함정 침몰, 수천~수만 명의 인명 피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시뮬레이션에서 한국의 역할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을 고려할 때 이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향후 전략적 선택지로서의 잠재력을 시사합니다.
한국이 빠진 전쟁 시뮬레이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전력의 핵심 축(linchpin)’으로 설정되었지만, 한국은 오직 주한미군(USFK)의 일부 전력만 차출될 수 있다는 언급에 그쳤습니다. 즉, 한국은 소극적 방관자로 묘사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한국은 이미 48만 명 이상의 현역군, 현대화된 미사일 방어 체계, 기계화 부대를 보유하고 있어, 제한적 상황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방위 공백을 최소화하면서도, 동맹 차원에서 미국을 지원할 방법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전략 1: 주한미군의 전면적 활용
현재 한국에는 4개 미 육군 여단급 전력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항공여단, 포병여단(MLRS), 군수지원여단, 그리고 교대 배치되는 기갑·스트라이커 여단이 그것입니다.
- 이 전력들은 이미 전시 즉각 투입 가능 상태로 준비되어 있으며, 미 본토 증원군보다 5~7일 빠른 전개가 가능합니다.
- 만약 한국이 주한미군의 전면적 차출을 허용한다면, 미군은 중국의 상륙 초기 단계에서 타격을 가해 교두보 형성을 지연시키고, 대만 항만·공항이 함락되기 전에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북한이 이 틈을 노려 도발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그러나 한국군 단독으로도 초기 억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태도는 한미동맹의 성숙성과 전략적 자신감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전략 2: 한국 해군의 해상로 안전 확보
한국은 직접적으로 중국 해군과 교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비전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 한국 해군은 이순신급 구축함(KDX-III, 이지스 시스템 탑재)과 장보고-III급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대잠수함전·미사일 방어·감시 정찰에 최적화된 전력입니다.
- 한국 해군이 3~5척 규모의 소규모 태스크포스를 필리핀해·루손 해협 등에 파견한다면, 미국과 일본의 보급선 안전을 크게 강화할 수 있습니다.
- 이는 중국군과 직접 충돌하지 않고도 자유로운 항행 보장(FONOP)과 보급선 보호라는 안정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할은 대외적으로 “대만 지원”이 아니라 “해상 교통로 보호”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도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전략 효과: 작은 움직임이 만드는 큰 차이
CSIS 보고서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단순 계산만으로도 한국의 기여는 분명한 효과를 냅니다.
- 미군 피해 감소: 전개 속도가 빨라지면 항공기 손실(500대 추산) 중 약 100대 이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 함정 손실 감소: 해상 보급선 방어 강화로 미국 및 일본 함정 피해도 완화됩니다.
- 작전 기간 단축: 미군 전력이 2~4일 안에 집결한다면 중국군 상륙 작전을 조기에 저지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즉, 한국은 전면전에 뛰어들지 않고도, 피로를 줄이고 승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적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 동맹의 성숙성을 보여줄 때
한국이 대만 해협 충돌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전투가 아닌 지원”입니다.
- 미국에는 믿을 수 있는 동맹임을,
- 북한에는 한미동맹의 흔들림 없음을,
- 지역 사회에는 중견국의 책임감 있는 기여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대만 사태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기를 모두가 바라지만, 동맹국의 준비 태세와 대응 옵션은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됩니다. 한국은 방관자가 아니라, 결정적 차이를 만드는 조용한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