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라는 단어는 단순히 가족 기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재벌가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흔드는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특히 승계 과정은 언제나 갈등과 화제를 동반합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혹은 딸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순간, 한 가문의 명운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의 방향까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세계 7대 재벌가의 실제 상속 드라마를 살펴보며, 그 안에 담긴 교훈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머독 가문 – 미디어 제국의 후계자 선택
루퍼트 머독은 폭스뉴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포스트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 미디어 제국의 창업자이자 지배자입니다. 그러나 고령의 머독이 물러나면서, 그의 네 자녀는 아버지가 남긴 거대한 권력과 재산을 두고 치열한 법정 다툼에 돌입했습니다.
2024년, 머독 부자가 신탁을 일방적으로 수정해 장남 라클란에게 모든 권한을 몰아주려 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다른 세 자녀—프루던스, 엘리자베스, 제임스—가 반발했습니다. 네바다 법원은 머독 측의 행위가 “불성실하고 고의적”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결국 2025년 9월에야 최종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라클란은 지배권을 확보했고, 다른 세 남매는 각 11억 달러를 받고 손을 뗐습니다.
머독 재벌가 사례는 단순한 가정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언론의 권력 균형과 직결된 사건이었습니다.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에 따라 미국과 영국의 여론 환경, 나아가 정치적 지형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2. 삼성 재벌가 – 이재용 회장의 굴곡진 여정
대한민국에서 “재벌가”라는 말은 곧 삼성과 동의어처럼 쓰입니다. 삼성은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제품까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기업입니다. 그러나 그 승계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과 얽히며 뇌물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항소와 재재판을 거치며 교도소를 드나들었고, 그 과정에서 삼성 재벌가는 글로벌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판결이 뒤집혔고, 2024~2025년 대법원 무죄 확정으로 마침내 “법적 족쇄”를 벗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재벌가와 권력의 관계”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시금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삼성은 국가 경쟁력의 상징이라는 인식 덕분에, 이재용 회장이 다시 회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삼성은 단순한 가문 기업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를 견인하는 거대한 엔진입니다.
3. 인디텍스 – 마르타 오르테가의 도전
스페인의 인디텍스는 자라(Zara)로 유명한 글로벌 패션 기업입니다. 2022년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의 막내딸 마르타가 회장직에 올랐을 때, 시장은 불안했습니다. “그녀가 진짜 경영 능력을 갖췄을까?”라는 의문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퍼지며 주가가 5%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2년 뒤 결과는 달랐습니다. 마르타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디자인과 브랜드 전략을 새롭게 정비했고, 인디텍스의 기업 가치는 두 배 이상으로 상승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아버지의 후광을 업은 인물이 아니라, 실제 역량으로 재벌가 승계를 성공시킨 사례가 되었습니다.
4. LT 그룹 – 30대의 젊은 회장, 루시오 탄 3세
필리핀의 LT 그룹은 항공사, 은행, 주류, 부동산을 아우르는 대형 재벌가입니다. 창업자 루시오 탄의 손자인 루시오 탄 3세가 2023년 30세의 나이로 회장직에 올랐습니다. 젊은 나이 때문에 “경험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과감한 디지털 전환과 효율화 정책으로 2년 만에 그룹 순이익을 17% 증가시켰습니다.
특히 필리핀항공을 현대화하고, 아시아브루어리와 부동산 사업을 강화한 전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루시오 탄 3세는 “젊은 피”가 오히려 보수적인 재벌가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5. 릴라이언스 – 인도의 삼 남매 경영 체제
인도 최대 재벌가 릴라이언스는 무케시 암바니의 세 자녀—아카시, 이샤, 아난트—가 공동으로 경영을 맡고 있습니다. 아카시는 통신사 지오(Jio)를, 이샤는 리테일을, 아난트는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주도하며 “삼두정치”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특히 아난트는 2035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워 글로벌 ESG 흐름에 발맞추고 있습니다. 한때 무케시와 동생 아닐 사이에서 치열한 분쟁이 벌어졌던 릴라이언스 재벌가는, 이제 세대교체를 통해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6. 아얄라 그룹 – 190년 전통의 새로운 리더십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중 하나인 아얄라는 1834년 설립 이후 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합니다. 2025년, 창업 가문의 후손들이 집단 지도 체제를 구성하며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습니다.
마리아나와 하이메 알폰소는 각각 부동산과 모빌리티를 맡았고, 사촌인 하이메 우르키호는 지속가능경영을 총괄합니다. 이처럼 집단 리더십 모델은 전통적인 단일 후계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벌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재벌가 승계에서 얻는 교훈
세계 재벌가들의 승계 드라마는 문화와 제도는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드러냅니다.
첫째, 법적 분쟁은 불가피하다. 머독, 삼성 사례에서 보듯이 상속은 단순한 가정사가 아니라 국가와 시장이 주목하는 사건입니다.
둘째, 역량 없는 후계자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는다. 인디텍스는 우려를 극복했지만, 다른 재벌가라면 몰락할 수도 있었습니다.
셋째,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릴라이언스와 아얄라는 ESG와 지속가능성이라는 글로벌 흐름에 맞춰 새로운 모델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결국 재벌가의 생존은 단순히 가문 이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실력과 혁신, 그리고 사회적 정당성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의 삼성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