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세계 최초로 완전한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설계했습니다. 스탠퍼드대학교와 아크연구소 공동 연구팀이 8월 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이 연구는, 항생제로도 듣지 않는 세균을 잡는 새로운 치료법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생물안보 전문가들의 우려도 함께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연에는 존재한 적 없는 바이러스 16종이 실험실에서 실제로 작동했다는 사실이 핵심입니다. 정확히 무엇을 만들었고, 왜 전문가들이 동시에 기대와 걱정을 표하고 있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3줄 요약
1. 스탠퍼드대 브라이언 히 교수팀은 AI 모델 '에보(Evo)'를 이용해 대장균을 죽이는 박테리오파지(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유전체를 처음부터 새로 설계했고, 이 중 16종이 실험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바이러스로 만들어졌습니다.
2. 이 AI가 만든 바이러스들을 함께 섞은 혼합물은 기존 자연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대장균 균주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3. 연구팀은 사람·동물·식물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는 AI 학습 데이터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했지만, 존스홉킨스대 생물안보센터 전문가들은 이런 AI 설계 유전자 서열을 걸러낼 수 있는 검사 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고 경고했습니다.
자연이 수십억 년에 걸쳐 서서히 만들어온 것을, AI는 이제 단 몇 시간 만에 똑같이 흉내 낼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능력이 정확히 약이 될지 위협이 될지는 아직 누구도 확실히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챗봇을 만들던 기술로 바이러스를 설계하다
이번 연구를 이끈 브라이언 히 교수는 챗GPT 같은 대형언어모델이 문장의 다음 단어를 예측하도록 학습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DNA 염기서열을 학습하는 AI 모델 '에보(Evo)'를 만들었습니다. 연구팀은 대장균을 감염시키는 박테리오파지인 '파이엑스174(ΦX174)'라는 바이러스를 출발점으로 삼고, 이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약 200만 개의 기존 박테리오파지 유전체를 AI에 학습시켰습니다. 이후 AI에게 완전히 새로운 바이러스의 유전체 전체를 한 번에 설계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유전자 하나하나를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하나의 완결된 유전체를 출력하게 한 것입니다. AI는 수천 개의 후보 유전체를 만들어냈고, 연구팀은 이 중 약 300개를 골라 실제로 합성한 뒤 세균에 주입했습니다. 세균은 이 유전 정보를 그대로 읽어 스스로 새로운 바이러스를 조립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16개의 바이러스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됐고, 이들을 섞은 혼합물은 기존의 자연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두 종류의 대장균 균주를 모두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파이엑스174는 과학사에서도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바이러스입니다. 1977년 프레더릭 생어가 세계 최초로 유전체 전체를 완전히 해독한 DNA 기반 생명체가 바로 이 바이러스였는데,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같은 계열의 바이러스가 이번에는 AI의 손에서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셈입니다.
숫자로 보는 이번 연구
| 항목 | 내용 |
|---|---|
| AI 학습에 사용된 기존 바이러스 유전체 | 약 200만 개 |
| 실제 합성해 시험한 후보 유전체 | 약 300개 |
| 실제 작동한 신규 바이러스 | 16개(모두 자연에 존재한 적 없는 종) |
※ 사이언스(2026년 8월 6일 게재) 및 스탠퍼드대 공식 발표 자료 종합.
표에서 보듯, 300개의 후보 가운데 16개만 실제로 작동했다는 것은 이 과정이 아직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연구팀에게는 이 숫자 자체보다 '작동하는 완결된 유전체를 AI가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극저온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이 중 하나의 바이러스는 진화적으로 상당히 동떨어진 방식의 DNA 포장 단백질을 껍질 안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AI가 단순히 기존 바이러스를 살짝 변형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관찰된 적 없는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냈다는 뜻입니다.
왜 지금 이 기술이 중요한가
전 세계 병원에서는 이미 항생제가 전혀 듣지 않는 세균 감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박테리오파지 요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AI가 특정 세균을 겨냥한 맞춤형 바이러스를 빠르게 설계함으로써, 이 치료법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항생제 내성균은 전 세계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문제로 꼽힙니다. 기존 박테리오파지 치료법은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중에서 효과가 있는 것을 찾아 쓰는 방식이라, 세균이 내성을 갖게 되면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만약 AI가 특정 세균의 특성에 맞춰 새로운 바이러스를 그때그때 설계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한계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입니다. 연구팀은 이런 잠재력에 주목해 에보 모델을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도록 공개했습니다. 다만 안전을 고려해, 사람과 동물, 식물을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는 애초에 AI 학습 데이터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이 던지는 경고
연구팀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는 해도, 외부 전문가들의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존스홉킨스대 보건안보센터의 톰 잉글스비 교수와 모리 한케 박사는 사이언스에 함께 게재된 해설 논문에서, AI가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은 이미 존재하지만 이를 안전하게 통제할 방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현재 합성 DNA 주문을 검사하는 기존 체계로는 AI가 새롭게 설계한 이런 유형의 유전자 서열을 걸러내기 어렵다는 점이 핵심 우려로 꼽힙니다.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톰 엘리스 교수는 이번 성과가 인상적이라면서도, 박테리오파지의 유전체는 상대적으로 작고 매우 단순한 편이라 이보다 훨씬 복잡한 유전체를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킹스칼리지런던의 필리파 렌초스 박사는 AI 모델 자체를 규제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DNA가 실제로 합성되는 단계까지 포함한 여러 층위의 감시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위험할 수 있나요?
이번에 만들어진 바이러스는 세균만을 감염시키는 박테리오파지로, 사람이나 동물, 식물을 감염시키지 않습니다. 연구팀도 이 점을 고려해 사람·동물·식물을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를 AI 학습 데이터에서 애초에 제외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원리적으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 설계에도 적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런 우려가 이번 발표와 함께 나온 안전성 논의의 핵심 배경입니다.
Q. 이 AI 모델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나요?
네. 연구팀은 에보 모델을 학계와 산업계 등 누구나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습니다. 이는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연구를 폭넓게 지원하려는 목적이지만, 동시에 안전 관리 측면에서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Q. 이 치료법이 실제로 병원에서 쓰이려면 얼마나 더 걸릴까요?
현재까지는 실험실 배양 접시 수준에서 효과를 확인한 초기 단계 연구입니다. 실제 임상에서 환자에게 사용하기까지는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등 추가적인 검증 절차가 필요하며, 구체적인 상용화 시점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신약 개발이 통상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이 기술 역시 실제 치료제로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론 — 가능성과 위험이 같은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이번 연구는 AI가 생명과학이라는 영역에서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항생제 내성균이라는 심각한 공중보건 위협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기대와, 아직 이 기술을 안전하게 통제할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같은 연구 안에서 동시에 나온다는 점이 이번 사안의 핵심입니다. 연구팀 스스로도 논문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에게 유전체를 설계하는 과정 전반에서 안전 전문가와 상의할 것을 당부했는데, 이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관리할 제도의 발전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문을 여는 순간,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세우는 안전장치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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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연구 내용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2026년 8월 6일 게재) 및 스탠퍼드대·사이언티픽아메리칸 등의 상세한 보도를 종합한 것입니다. 이 분야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관련 안전 기준과 규제는 향후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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