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절대로 CBDC가 아닙니다." 정작 이 사업을 이끄는 한국은행 총재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정부 발표 자료와 수많은 언론 보도는 여전히 이를 'CBDC 실증사업'이라 부릅니다. 편리함을 앞세운 완전히 새로운 화폐 기술 하나를 두고, 이름을 둘러싼 이 어색한 신경전 자체가 어쩌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한강', 정확히 무엇이고 왜 이렇게 용어부터 시끄러운지, 그리고 서두르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질문들은 무엇인지 정리해보겠습니다.
3줄로 정확하고 간결하게 요약
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7월 기자간담회에서 "한강 프로젝트는 CBDC 프로젝트가 아니다", "리테일 CBDC를 계획한 적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공식 부인했지만, 정부와 언론은 여전히 이를 CBDC 실증사업으로 지칭하고 있어 용어 자체를 둘러싼 혼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 미국은 정부의 국민 자산·거래 통제 가능성을 우려해 CBDC 발행 자체를 행정명령과 법률로 금지했으며, 이런 우려가 반드시 한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3. 정작 국내에서 실시한 1차 실증 실험은 참여 유인 부족으로 목표치의 80% 수준에 그쳤고 한때 2차 테스트가 잠정 보류됐던 전례가 있어, 국민적 공감대 없이 속도만 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름조차 합의되지 않은 제도를 둘러싼 속도전이라면, 그 속도부터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CBDC 아니다"라는 총재의 말, 왜 중요한가
프로젝트 한강은 한국은행이 2023년부터 준비해온 디지털화폐 활용성 테스트로,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BNK부산 등 7개 은행과 함께 일반인 10만 명을 대상으로 1차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7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보도에 대해 "화도 난다"며 "우선 한강 프로젝트는 CBDC 프로젝트가 아니다"라고 못박았습니다. 그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예금을 디지털화한 것"이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안전하게 도입하자는 취지로 한 것이 한강 프로젝트"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이 실험이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화폐가 아니라,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예금토큰'을 검증하는 사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의 2026 경제성장전략에서는 이를 CBDC와 연계해 국고금 일부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이 담겼고, 상당수 언론은 여전히 이를 'CBDC 실증사업'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정부 스스로도 정확한 용어를 통일하지 못한 제도를, 국민이 명확히 이해하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노릇입니다. 더구나 정부는 2030년까지 700조 원 규모 예산의 25%를 예금토큰으로 지급하겠다는 중장기 목표까지 함께 내놓았는데, 이렇게 국가 재정과 직결되는 사업의 이름조차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채 속도를 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신뢰의 문제를 낳습니다. 국민 입장에서는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합의되지 않은 제도에 자신의 돈과 거래 정보를 맡겨야 하는 셈입니다.
숫자로 자세히 살펴보는 CBDC를 둘러싼 세계의 온도차
| 국가 | 현황 |
|---|---|
| 미국 | 행정명령·법률로 CBDC 연구·발행 자체를 금지 |
| 러시아 | 2026년 9월 1일부터 은행·대형상점 단계적 의무화 |
| 한국(1차 실증) 예금토큰 지갑 개설률 | 목표치의 약 80%(8만/10만 명) |
※ 전자신문·한국경제·글로벌이코노믹·서울신문 및 위키피디아 보도 종합.
표에서 보듯, CBDC를 향한 각국의 태도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행정명령으로 CBDC 발행을 금지했고, 같은 해 7월에는 하원에서 반CBDC감시국가법까지 통과시켰습니다. 그는 "CBDC는 연방정부가 국민의 자산과 거래를 통제할 수 있는 위험한 수단"이라며 "미국은 결코 중앙집중 디지털화폐로 국민의 자유와 사생활, 경제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법은 연준이 CBDC를 시험하거나 연구하는 것 자체를 전면 금지하고, 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통하는 중개형 모델까지 허용하지 않는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디지털 루블을 2026년 9월 1일부터 은행과 대형 상점에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법을 시행에 들어갔고, 중국 역시 디지털 위안화 시범 운영을 꾸준히 확대해왔습니다. 대규모 시범 사업이나 의무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나라가 중국과 러시아라는 점은, 이 기술이 어떤 정치체제와 궁합이 맞는지를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편리함이라는 명분, 그리고 남은 질문들
국민의 거래가 어디까지 추적될 수 있는지, 돈의 사용처와 사용기간까지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닌지, 화폐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은 보장되는지부터 답해야 합니다.
기술은 국민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간편결제·인터넷뱅킹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차 실증 실험에서도 참여 은행 관계자는 "단순히 신기술 실험이라는 이유만으로는 고객이 참여할 유인이 되기 부족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미 편리한 결제 수단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국민이 굳이 새로운 디지털화폐로 갈아탈 유인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설명돼야 합니다. 게다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화폐라는 특성상, 특정 용도로만 쓰이도록 제한하거나 유효기간을 설정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해집니다. 이런 기능이 재난지원금이나 바우처처럼 선의로 쓰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개인의 소비 선택권을 국가가 사후적으로 제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안전장치가 완벽하게 마련되기 전까지는,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서둘러 속도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예금토큰과 CBDC는 정확히 어떤 부분이 서로 다른가요?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권력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인 반면, 예금토큰은 시중은행이 고객의 예금을 디지털 형태로 전환한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프로젝트 한강이 후자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지만, 두 개념 모두 거래 추적성이나 프로그래밍 가능성 측면에서 유사한 우려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Q. 프로젝트 한강은 지금 정확히 어떤 단계에 와 있나요?
1차 실증 실험 이후 한때 2차 테스트가 잠정 보류됐다가, 최근 참여 은행과 이용자 규모를 늘리고 송금 기능과 보유 한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2단계 테스트가 재개된 상태입니다. 다만 이는 실증 단계일 뿐, 정식 도입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Q. 한국은행은 정확히 왜 이 사업을 계속해서 추진하나요?
한은은 현금 이용 감소와 민간 스테이블코인 확산이라는 지급결제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래 화폐 인프라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검증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입 여부와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한은의 공식 입장입니다.
결론 — 이름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들
한국은행 스스로 "CBDC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사업을, 정부는 CBDC와 연계한 국고금 지급 계획으로 밀어붙이고 언론은 여전히 CBDC라 부르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이 논쟁이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름을 무엇으로 부르든, 정작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거래 내역이 얼마나 들여다보일 수 있는지,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그대로 보장되는지입니다. 물론 한국은행은 이런 우려에 대해 정식 도입 여부와 시기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미래에 대비한 기술 검증 단계라고 설명합니다. 지급결제 인프라가 계속 진화하는 흐름 속에서 선제적인 연구 자체를 무조건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반론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편리함 하나만으로 제도의 속도를 정할 것이 아니라, 법적·제도적 안전장치와 국민적 합의가 함께 갖춰지는 것이 먼저입니다. 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기술 자체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 기술을 도입하는 절차와 속도, 그리고 국민에게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름 하나조차 제대로 합의되지 않은 채 실증 규모만 계속 커지고 있는 지금의 흐름은, 정책 신뢰도 측면에서도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좋은 제도는 결코 서두름이 아니라, 충분한 설명과 진정한 동의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됩니다.
추천글
본문의 내용은 전자신문·한국경제·글로벌이코노믹·서울신문 등의 상세 보도 및 한국은행 공식 발표를 종합한 것이며, CBDC와 예금토큰을 둘러싼 정책은 앞으로 국회 입법과 한국은행의 추가 발표에 따라 얼마든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회의원 특권, 다른 나라는 어떨까 (0) | 2026.09.13 |
|---|---|
| 건강보험료 동결, 희귀질환 혜택은 확대 (0) | 2026.09.11 |
| 대한민국 정당,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0) | 2026.09.10 |
| 현대차, 아파트 주차로봇 실증 — 최대 50% 더 세운다 (0) | 2026.08.12 |
| 국회 필리버스터가 뭐야 — 뜻·요건·최근 논란까지 (0) | 2026.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