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프로야구는 2024년 처음으로 한 시즌 관중 1,000만 명을 넘어서며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가 됐습니다. 그런데 야구장에서 응원가를 부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 경기는 도대체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을까요?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1839년 에브너 더블데이라는 군인이 쿠퍼스타운에서 야구를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퍼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역사학자들이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신화예요. 오늘은 야구의 진짜 기원을 영국의 아이들 놀이부터 미국의 규칙 정립, 그리고 한국에 처음 들어온 시점까지 국내외 기록으로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3줄 요약
1. 야구는 한 사람이 발명한 게 아니라, 영국의 공놀이가 미국에서 100년 넘게 다듬어진 결과입니다.
2. "더블데이 발명설"은 1907년 미국 위원회가 한 사람의 편지만 근거로 채택한 신화로, 지금은 부정됩니다.
3. 한국 야구의 시작은 흔히 1905년으로 알려졌지만, 대한야구협회는 2013년 이를 1904년으로 바로잡았습니다.
야구는 원래 영국 아이들의 공놀이였다
야구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김치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김치를 "누가 발명했느냐"고 물으면 답할 수 없죠. 오랜 세월 여러 지역에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담그다가 지금의 모습이 됐으니까요. 야구도 똑같습니다. 공을 던지고, 막대기로 치고, 정해진 지점을 돌아오는 놀이는 수백 년 전부터 영국 곳곳에 있었어요.
대표적인 것이 스툴볼과 라운더스입니다. 스툴볼은 우유 짜는 의자를 표적으로 두고 공을 던지면 그것을 막는 놀이였고, 라운더스는 공을 친 뒤 기둥 몇 개를 돌아 득점하는 놀이였어요. 야구 역사 연구자 데이비드 블록은 야구의 가장 직접적인 조상으로 스툴볼 계열의 놀이를 꼽고, 라운더스와 초기 야구는 사실상 지역마다 이름만 달랐던 같은 놀이라고 봅니다.
"베이스볼"이라는 단어 자체도 영국에서 먼저 등장합니다. 1744년 런던의 출판업자 존 뉴베리가 펴낸 어린이 책에 "base-ball"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가 그림과 함께 실렸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기록이에요. 1755년에는 영국 서리 지방의 변호사 윌리엄 브레이가 부활절 월요일에 남녀가 함께 베이스볼을 했다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1818년 출간된 제인 오스틴의 소설 노생거 사원에도 주인공이 어린 시절 크리켓과 베이스볼을 즐겼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
최초의 베이스볼 기록 1744년 |
미국 첫 공식 기록 경기 1846년 |
한국 야구 전래 1904년 |
미국에서는 이미 1791년에 금지령까지
영국 이민자들과 함께 이 놀이는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시가 1791년에 만든 조례예요. 새로 지은 회의장 건물 창문이 깨질까 봐 그 주변 80야드 안에서 베이스볼을 하지 못하게 한 겁니다. 이 문서는 2004년에 다시 발견돼 화제가 됐어요. 놀이를 금지할 정도였다면 그 전부터 이미 동네 아이들이 꽤 많이 하고 있었다는 뜻이죠.
캐나다에도 흔적이 있습니다. 1838년 온타리오주 비치빌에서 열린 경기를 묘사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약 50년 뒤에 쓴 편지에 담긴 회고라 정확성에는 한계가 있어요. 이 시기의 야구는 지역마다 규칙이 제각각이었습니다. 베이스 개수도, 아웃시키는 방법도 달랐고, 공을 주자에게 직접 맞혀 아웃시키는 방식도 흔했어요.
현대 야구의 틀을 만든 니커보커 규칙
제각각이던 놀이가 오늘날의 스포츠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1845년 뉴욕의 니커보커 야구 클럽이 만든 규칙입니다. 클럽 회원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이 규칙은 공을 주자에게 던져 맞히는 방식을 금지하고, 대신 수비수가 공을 잡아 베이스를 밟거나 주자를 태그하도록 했어요. 투수는 공을 아래에서 위로 부드럽게 던져야 했습니다. 경기가 덜 위험해지면서 어른들이 즐기는 운동이 된 셈이죠.
이듬해인 1846년 6월 19일, 뉴저지주 호보컨의 엘리시안 필즈에서 니커보커 클럽과 뉴욕 나인이라는 팀이 경기를 치렀습니다. 결과는 뉴욕 나인이 4이닝 만에 23대 1로 크게 이겼어요. 규칙을 만든 팀이 오히려 대패한 셈인데, 이 경기가 오랫동안 미국 최초의 공식 기록 경기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이후 규칙은 계속 다듬어졌습니다. 1857년 뉴욕 지역 클럽들이 모인 회의에서 21점을 먼저 내면 이기던 방식 대신 9이닝 제도가 정착했고, 이듬해에는 16개 클럽이 전국 야구선수협회를 만들었어요. 1869년에는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선수 전원에게 급여를 주는 첫 프로 구단으로 출범해 한 시즌 무패를 기록했습니다.
| 구분 | 라운더스 (영국) | 초기 야구 (1845년 이전) | 니커보커 규칙 이후 |
|---|---|---|---|
| 득점 지점 | 기둥 4개 안팎 | 지역마다 다름 | 다이아몬드형 베이스 4개 |
| 주자 아웃 | 공을 몸에 맞힘 | 공을 몸에 맞힘 | 태그 또는 포스아웃 |
| 투구 | 아래로 던짐 | 제각각 | 아래로 던짐 (언더핸드) |
| 경기 종료 | 합의 | 합의 | 21점 선취, 1857년부터 9이닝 |
더블데이 발명설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그렇다면 "더블데이가 야구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배경에는 국가적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은 야구를 "미국의 국민 오락"으로 키우고 있었는데, 영국 출신 스포츠 기자 헨리 채드윅은 야구가 영국 라운더스에서 나왔다고 주장했어요. 미국 입장에서는 국민 스포츠가 옛 식민 모국의 아이들 놀이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았죠.
스포츠용품 사업가이자 전 야구 스타였던 앨버트 스폴딩은 1905년 기원을 밝히겠다며 조사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위원장은 내셔널리그 회장을 지낸 에이브러햄 밀스였어요. 그런데 위원 구성부터 미국 기원설을 지지하는 사람들 위주였고, 라운더스 기원설을 주장한 채드윅은 빠졌습니다.
위원회가 근거로 삼은 것은 에브너 그레이브스라는 노인이 보낸 편지 한 통이었어요. 1839년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더블데이가 야구를 고안하는 것을 봤다는 내용이었죠. 위원회는 1907년 말 이를 공식 결론으로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이 확인해 보니 더블데이는 1839년 쿠퍼스타운이 아니라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있었고, 그가 남긴 방대한 편지와 기록 어디에도 야구 이야기는 없었어요. 게다가 앞서 본 것처럼 "베이스볼"이라는 기록은 그보다 100년 가까이 앞서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신화가 틀린 것으로 밝혀진 뒤에도 쿠퍼스타운은 야구의 성지로 남았다는 점이에요. 1939년 이른바 야구 탄생 100주년에 맞춰 이곳에 명예의 전당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지금도 매년 헌액식이 열립니다. 신화가 하나의 문화가 된 독특한 사례죠.
야구의 역사 타임라인
1744년 : 영국 어린이 책에 "base-ball" 첫 등장
1755년 : 윌리엄 브레이의 일기에 베이스볼 경기 기록
1791년 : 미국 피츠필드시, 회의장 주변 베이스볼 금지 조례
1845년 : 뉴욕 니커보커 클럽 규칙 제정
1846년 : 호보컨에서 미국 첫 공식 기록 경기
1869년 :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 첫 프로 구단
1872년 : 미국인 교사 호러스 윌슨, 일본에 야구 소개
1876년 : 미국 내셔널리그 출범
1903년 : 첫 월드시리즈 개최
1904년 : 선교사 질레트, 서울 YMCA 회원에게 야구 지도
1907년 : 밀스 위원회, 더블데이 발명설 공식 발표
1939년 : 쿠퍼스타운 명예의 전당 박물관 개관
1982년 : 한국 프로야구(KBO리그) 6개 구단으로 출범
한국 야구는 언제 시작됐을까
한국 야구의 출발점은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입니다. 1903년 서울에 황성기독교청년회, 즉 지금의 서울 YMCA를 세우고 총무를 맡은 그는 청년들을 모으는 방법으로 야구를 택했어요. 미국에서 배트와 공, 글러브를 들여와 회원들에게 직접 가르쳤습니다.
많은 책과 기사에서 그 시점을 1905년이라고 소개해 왔는데, 사실은 계산 착오에서 나온 숫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1930년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의 조선야구사 연재와 1932년 일본인 오시마 가쓰타로가 쓴 조선야구사는 모두 메이지 37년, 즉 1904년으로 적었어요. 그런데 1958년 한 체육사 책이 이를 1905년으로 잘못 환산했고, 이 오류가 이후 공식 역사서까지 퍼졌다는 분석입니다. 대한야구협회는 2013년 12월 기원 정정 선포식을 열고 한국 야구의 시작을 1904년으로 바로잡았습니다.
한국인이 참여한 첫 경기로는 1906년 서울 훈련원 터에서 열린 YMCA 야구단과 덕어학교, 즉 독일어 학교 야구단의 경기가 꼽힙니다. 다만 YMCA와 관립 한성고등학교의 경기를 최초로 보는 견해도 있어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려요. 1909년 여름에는 일본 유학생들이 만든 대한흥학회 야구단이 귀국해 YMCA 팀을 19대 9로 이기면서 야구 붐을 일으켰습니다. 1896년 서재필이 서울에서 외국인들과 야구를 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한국인끼리 팀을 꾸린 경기는 아니어서 기원으로 보지는 않는 편이에요.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야구 상식
야구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왔다
베이스볼을 우리가 "야구(野球)"라고 부르는 건 일본의 영향입니다. 1890년대 일본 제일고등학교 야구부원이던 주마 가나에가 들판에서 하는 공놀이라는 뜻으로 이 말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한국에서는 초기에 "타구"나 "격구"라는 말도 함께 쓰였지만, 결국 야구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투수가 공을 위에서 던지게 된 건 나중 일이다
초창기 투수는 타자가 치기 좋게 공을 아래에서 던져 주는 역할이었어요. 지금처럼 투수와 타자가 치열하게 수 싸움을 하는 구도는 투구 방식 제한이 하나씩 풀리면서 생겼습니다. 미국 프로야구는 1884년에 어깨 위로 던지는 오버핸드 투구를 허용했고, 1893년에는 투수판과 홈플레이트 사이 거리를 지금과 같은 60피트 6인치, 약 18.44미터로 정했어요.
한국 프로야구 첫 경기는 끝내기 만루홈런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한국 프로야구 개막전은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가 맞붙었는데, 연장 10회말 MBC 이종도 선수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며 경기를 끝냈어요. 원년 6개 구단으로 시작한 리그는 지금 10개 구단 체제가 됐습니다.
야구 기원 논쟁,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새 기록이 계속 발견되는 쪽
옛 신문과 일기가 디지털로 공개되면서 더 오래된 기록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피츠필드 조례도 2004년에야 재발견됐어요. 앞으로도 연표의 첫 줄이 더 앞당겨질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신화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쪽
더블데이 신화가 부정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념품과 관광 홍보에서는 자주 등장합니다. 한국 야구 1905년 설도 정정 이후까지 여러 자료에 남아 있어요.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야구는 크리켓에서 나온 건가요?
직접적인 조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크리켓과 야구는 모두 영국의 배트와 공 놀이에서 갈라져 나온 사촌에 가깝고, 야구는 라운더스와 스툴볼 계열에 더 가깝다는 게 연구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에요.
Q. 그럼 야구를 만든 사람은 카트라이트인가요?
카트라이트는 현대 규칙을 정리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지만, 혼자 만든 것은 아닙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니커보커 클럽의 다른 회원들, 특히 9이닝과 유격수 포지션 정착에 기여한 대니얼 애덤스 같은 인물의 역할도 강조돼요.
Q. 한국 야구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건가요?
처음 전한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입니다. 다만 이후 일본 유학생들과 일제강점기 학교 체육을 통해 크게 퍼졌기 때문에 용어와 문화에는 일본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어요.
결론, 야구는 함께 만들어 온 스포츠
야구는 천재 한 명이 하룻밤에 만든 발명품이 아닙니다. 영국 아이들의 공놀이가 바다를 건너고, 뉴욕의 클럽 회원들이 규칙을 다듬고, 선교사와 유학생들이 다른 나라로 전하면서 300년 가까이 함께 키워 온 스포츠예요. 그래서인지 야구는 나라마다 응원 문화도, 경기 스타일도 조금씩 다르게 발전했습니다.
다음에 야구장을 찾는다면, 지금 보고 있는 9이닝과 다이아몬드 위의 네 베이스가 1845년 뉴욕의 한 클럽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세요. 경기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질 거예요.
이 글은 영미권 야구사 연구 자료와 국내 언론·야구사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초기 야구사는 기록이 부족해 연구자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으며,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면 연표가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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