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G 시대의 문턱에서, 글로벌 네트워크 강자들 간의 기술 철학 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삼성과 에릭슨이 있습니다. 두 기업은 6G 무선 접속 네트워크(RAN)의 핵심 구성 방식—CU(중앙 장치)와 DU(분산 장치)의 통합 또는 분리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고 있죠.
이 논쟁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닌, 6G의 패권을 좌우할 전략적 분기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에릭슨의 주장: “CU와 DU는 함께 가야 한다”
에릭슨의 Gunnar Mildh는 6G 시대에 CU와 DU를 다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5G에서 CU와 DU를 분리한 구성은 실제 성능 개선에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에릭슨에 따르면, 통합된 하드웨어 위에서 CU와 DU 기능을 처리하면 비용 절감은 물론, 지연 시간과 복잡성까지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에릭슨의 논리 구조는 이렇습니다:
- 5G에서의 실험 실패: CU와 DU를 분리한 운영자 수는 거의 없음
- 성능 저하: 분리로 인해 오히려 전송 지연과 에너지 소비 증가
- 비용 절감 효과 미미: 중앙 집중형 CU가 오히려 네트워크 운영 부담 가중
- 클라우드 RAN 기술 발전: 범용 CPU인 Granite Rapids-D 등을 활용하면, 통합된 구성도 성능 확보 가능
삼성의 반론: “분리는 필수, 미래는 유연성이 핵심”
반면, 삼성은 에릭슨의 주장에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삼성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CU와 DU의 분리가 성능 저하를 일으키지 않으며, 오히려 서비스 유연성과 확장성, 다양한 사용자 시나리오에 대응하는 데 핵심이라는 것이죠.
- 53,000개의 상업용 vRAN 사이트 구축 사례를 언급하며, 실제로 vCU와 vDU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 또한, 분리를 통해 서비스 맞춤형 배치 전략(예: 엣지 배치, 지역별 분산 처리)이 가능해지며, 용량 증가와 지연 시간 개선이라는 운영상 이점을 강조합니다.
RAN은 다시 통합될 것인가, 계속 분리될 것인가
RAN 아키텍처는 4G 이전까지는 대부분 BBU(기지대역장치)라는 단일 장비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5G에서는 효율성과 확장성 강화를 위해 CU와 DU가 분리되었습니다.
- CU: 제어 신호, 암호화 등 덜 계산 집약적인 기능
- DU: 물리 계층 처리, MIMO 같은 고속 데이터 처리
하지만 에릭슨은 이 분리가 실제로는 경제성과 성능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시 ‘하드웨어 통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LEGO vs 노트북: 기술적 비유로 본 6G의 철학
에릭슨은 한 가지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일반 사용자는 완성된 노트북을 원하지만, LEGO 마스터는 부품을 조립하고 싶어 한다.”
즉, 복잡하고 세분화된 시스템보다, 효율적인 ‘통합형’ 네트워크가 오히려 더 나은 성능과 경제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삼성은 “우리는 LEGO 마스터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는 태도입니다.
O-RAN과 대규모 MIMO, 그리고 현실의 한계
양사의 논쟁은 O-RAN Alliance의 존재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2018년, O-RAN Alliance는 DU와 RU 간 개방형 프론트홀 인터페이스를 통해 멀티 벤더 환경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MIMO의 구현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 DU와 RU 사이의 일부 기능 분리 어려움
- 다중 벤더 환경에서의 소프트웨어 최적화 문제
- Class A vs Class B 수정안 논쟁 등
이러한 기술적 도전은 O-RAN의 이상을 현실로 옮기는 데 많은 장벽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6G에서의 미래: 다시 중앙 집중형으로?
에릭슨의 주장대로라면, 6G는 다시 중앙 집중형 구조로 회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초기 BBU 구조와 유사한 방향입니다. 실제로 Granite Rapids-D 같은 CPU는 모든 Layer 1 작업을 단일 서버에서 수행할 수 있게 하면서, 이 시나리오를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삼성은 “우리는 이미 상용 vRAN을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진보된 유연형 네트워크를 지향할 것이다”라고 선을 긋습니다.
결론: 경쟁이 있어야 기술이 발전한다
삼성과 에릭슨의 6G 논쟁은 단순한 기술적 논의가 아닙니다. 이는 6G를 주도할 철학, 산업의 주도권, 표준화의 방향성까지 결정짓는 상징적인 싸움입니다.
통합이냐 분리냐—답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이러한 경쟁이 있기에 우리는 더 빠르고, 더 똑똑한 네트워크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